책 읽기, 소설 읽기

왜 인생이 복잡할수록 소설이 더 필요할까?

삶이 단순할 때는 소설이란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인간관계가 복잡해지고, 감정의 이름조차 쉽게 붙일 수 없을 만큼 미묘해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문학을 필요로 하게 된다.

소설은 그 혼란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우리가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대신 말해주고, 때로는 정답 대신 질문을 남기며 우리에게 ‘견디는 법’을 가르쳐다.

이 글에서는 소설이 삶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 다섯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려 한다. 인생이 복잡하다고 느껴질수록, 우리는 왜 더 자주 책장을 넘겨야 할까?

1. 타인의 삶을 빌려 살아본다는 것의 깊이

우리는 평생 하나의 인생만 살아볼 수 있지만, 소설은 그 제한을 가볍게 넘어서게 해준다. 독자는 시대를 건너고, 성별과 국적을 초월하며, 다양한 삶을 살아보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간접 체험’이 아니라, 때로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고통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처음 보는 세계 앞에서 생각의 틀이 흔들리는 순간을 만든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이 문장은 곧 이어질 수많은 인물의 사연과 갈등을 예고하며, 독자에게 ‘정답 없는 삶’을 체험하게 만든다.

2.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언어의 힘

마음속에 맴도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할 때가 있다. 슬픔인지 허전함인지, 분노인지 상처인지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 소설은 그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단정하지 않고, 언어로 가만히 다듬어준다. 그렇게 독자는 ‘내가 느낀 게 이 감정이었구나’ 하고 비로소 자각하게 된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은 “나는 그때 슬픔이라는 감정을 처음 알았다”는 고백으로 시작된다. 이 짧은 문장은 성장의 통과의례처럼 느껴지며, 감정이 언어를 만나는 찰나의 순간을 대표한다. 소설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마음의 결을 짚어내며, 내면을 직면하게 돕는다.

3. 관념의 경계를 허물고 사고의 숨을 틔운다

세상은 언제나 한 가지 관점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소설은 정답보다 질문을 남기고, 우리가 너무 쉽게 믿고 있던 관념에 균열을 낸다. 이야기 속 갈등과 선택은 선악으로 단순화되지 않고, 독자는 인물의 입장이 되었다가, 다시 반대편에 서보기도 한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었다. “그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 자신이 커다란 벌레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이 낯설고 기괴한 장면은, 인간 존재의 조건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소설은 고정된 사고의 틀을 깨고,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생각을 넓힌다.

4. 설명되지 않는 삶을 견디는 법

현실은 늘 명쾌하지 않다. 때로는 억울하고, 때로는 설명되지 않으며, 때로는 의미조차 부여할 수 없는 사건들이 닥쳐온다. 소설은 그런 복잡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품는다.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독자와 함께 질문 속에 머물며 모호함을 견디는 법을 가르친다.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스스로 ‘위대한 인간’이 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지만, 결국 죄책감과 내적 고통에 무너진다. 도스토옙스키는 도덕적 딜레마와 인간의 죄의식을 무겁게 끌고 가며, 독자에게도 깊은 내면을 응시하게 만든다. 삶은 단순하지 않으며, 소설은 그 복잡함을 외면하지 않는다.

5. 언어로 사유하는 인간으로 성장한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재미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이 이어지는 결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익히는 일이다. 좋은 문장은 생각의 리듬을 바꾸고, 말하는 방식을 정제시킨다. 그 감각은 어느 순간 우리의 말 속에 스며들고, 글 속에 녹아든다.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흐르는 물결에 떠밀리며, 끊임없이 과거로 되돌아가면서.” 이처럼 문학은 단어와 리듬을 통해 인생의 잔상 하나까지도 우리 안에 각인시킨다. 그것은 곧 삶을 해석하는 방식이 된다.

마치며

소설은 우리에게 인생의 정답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소설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소설은 말한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이 이야기를 통해 묻고 스스로 찾아보라”고. 그리하여 우리는 책장을 덮을 때마다 조금은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온기가 더해진다.

복잡한 세상을 살수록, 우리는 더 많이 읽고, 더 깊이 느껴야 한다. 소설은 그 깊이로 들어가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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