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그날, 세상이 내게 말을 걸었다

어느 날, 평소처럼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던 나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핸드폰 알림이었는지, 목이 말랐던 건지, 아니면 단순히 피곤해서였는지. 분명한 건, 그 짧은 멈춤이 나에게 아주 낯선 풍경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날의 하늘은 유난히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회색빛 도시 건물들 위로 햇살 한 조각이 무심하게 내려앉았고, 가로수의 잎은 바람에 살짝 흔들리며 조용히 계절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 거리의 소음을 들었다. 엔진 소리, 사람들의 발자국,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의 웃음소리. 모든 게 늘 거기 있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멈추는가? 아니, 우리는 정말 한 번이라도 제대로 멈춰본 적이 있는가?

매일을 달리듯 살아가면서 멈춤은 낭비라고 여긴다. 해야 할 일이 많고, 해야만 하는 이유는 더 많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에 밀려 생각을 잃고, 감정을 잃고, 자기 자신을 잃는다.

그러나 멈추면, 보인다.
그동안 스쳐 지나갔던 얼굴들, 늘 그 자리에 있던 나무들, 가슴속 깊이 쌓여 있던 질문들. 바쁘게 살며 무심히 지나쳤던 삶의 디테일이, 마치 누군가 손을 잡아 천천히 보여주는 것처럼 또렷해진다.

그날 멈춰 선 거리에서 나는 알았다. 삶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때로는 잠시 멈추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방향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 이후로 나는 하루에 한 번, 일부러 멈추는 시간을 만든다. 걷다가 멈추고, 글을 쓰다 멈추고, 생각의 흐름 속에서도 멈춘다. 멈춤 속에 진짜 내가 있었다. 바람의 냄새, 하늘의 움직임, 마음의 떨림. 그 모든 풍경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혹시 오늘도 달리고 있다면, 지금 이 글을 읽는 이 순간만큼은 조용히 멈춰보기를.
그곳에, 당신이 미처 보지 못한 진짜 삶의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