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어떤 사람인가? 우연히 신문에서 백영옥 작가의 ‘프로에 대하여’라는 칼럼을 읽고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프로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던 걸까?
원문 프로에 대하여 – 백영옥 소설가 칼럼 (2023년 6월 3일자)
누구의 절박함이 더 큰가?
내가 여러 분야 프로들을 인터뷰하며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의 노력보다,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이들의 노력이 훨씬 더 절박하다는 것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소설가로 살기 위해 처음 필요한 건 재능이고, 이후는 체력이라고 말했다. 고치고 고쳐서 더는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한 번 더 고치는 사람이 작가이기 때문이다. 할랄 엘리슨의 말처럼 “관건은 작가 되기가 아니라 작가로 살아가기”다.
칼럼 인용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을 보면 인생을 참 쉽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 ‘저 사람은 돈 많이 벌어서 좋겠다, 저 사람은 능력을 타고났을거야. 운이 좋은거지.’ 잘 된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건 참 쉽다.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밑에서 위로 올라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보다 이미 위쪽에 있는 이들이 밑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훨씬 더 큰 공포심과 절박함을 가지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왜 아니겠는가. 어쩌다 한번 성공하는건 운으로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계속해서 성공한 상태를 유지하는건 또다른 문제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인내와 체력이다.
포기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 서늘한 인내심
쉽게 쓴 것처럼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 쉽게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퇴고와 연습이 필요한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자연스러운’이라는 단어는 프로가 듣는 최고의 상찬 중 하나다.
예전에는 열정이 좋아하는 것을 향해 돌진하는 ‘뜨거운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이제 열정이 포기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 ‘서늘한 인내심’이라는 걸 안다.
뜨거운 열정보다 서늘한 인내심이 훨씬 어려운 것 같다. 뜨거운 열정은 단거리 달리기 같은 것이다. 뜨겁게 불타올라 한동안 열심히 하는 것은 인생의 한챕터 어디에선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시들지 않고 꾸준히 하는 서늘한 인내심이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모두 이 ‘서늘한 인내심’이라는 것을 갖춘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나만의 노력,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타고난것처럼 보이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사실은 이 뜨겁도록 서늘한 인내심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감을 찾기보다 ‘그냥’ 일어나서 일하러 간다
원하는 글을 쓰기 위해 작가는 원치 않는 많은 글을 쓰고, 원하는 옷을 입기 위해 모델은 혹독한 식단 조절을 한다. “영감을 찾는 건 아마추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하러 간다”는 소설가 필립 로스의 말처럼 프로는 ‘그냥’ 하는 사람들이다.
‘그냥’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열정의 다른 이름인 ‘인내’가 만든다. 좋아하는 곳에 가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더 많은 곳에 기꺼이 가 본 사람, 우리가 그들을 프로라 부르는 이유다.
이 부분에서 많이 부끄러웠다. 요즘 나는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 같은데도 ‘그냥’ 꾸준히 하지 못하고 더 쉽고 재밌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대단한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갑자기 판이 뒤집히기라도 할 것 처럼.
가만히 보면 세상은 일단은 되던 안되던 ‘그냥’ 계속 하는 사람들에게 결국엔 기회가 돌아가는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기싫은 일을 참아낼 수 있는 능력, 그 능력이 누군가를 프로로 만든다.
나는 프로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순간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서늘한 인내심’을 가지고, ‘그냥’ 계속 해보자.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프로의 자리에 올랐더라도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체력과 인내심을 열심히 길러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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