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해영 저녁의 구애

편혜영 <저녁의 구애> 삶과 죽음 사이의 어느 머뭇거림

편혜영 단편소설 <저녁의 구애> 분석

우리는 모두 언제 올지 모를 죽음을 기다리며 산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시기는 공평하지 않다. 어제까지 살아있던 사람이 오늘 문득 죽기도 하고 때로는 생각지 못한 재앙으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기도 한다. 소설은 다양한 각도에서 죽음을 살펴보면서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저녁의 구애 줄거리

김은 연락이 끊어진지 10년도 넘은 지인에게서 함께 알던 어른이 곧 돌아가실 것 같으니 화환을 부탁한다는 연락을 받는다. 화원을 운영하는 김은 썩 내키지는 않지만 예전에 그 어른에게 졌던 신세가 있었기에 화환을 직접 배달해주기로 한다. 집에서 남쪽으로 380킬로미터나 떨어진 낯선 도시, 그는 그곳으로 아직 죽지 않은 어른의 장례식 화환을 배달하러 간다.

그 도시는 몇 년전 대지진이라는 재앙을 겪은 곳이다. 이곳은 언제나 모든 시민이 지진에 대한 대피 메뉴얼을 숙지하는 곳이다. 언제나 일정 부분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곳, 재난 대비용으로 만들어진 통조림이 지역의 특산물로 팔리는 곳이다. 그는 4시간이 걸려 병원에 도착했지만 아직 어른은 돌아가시지 않았다. 김은 화환 배달임무를 마무리 하기 위해 어른이 얼른 돌아가시기를 기다리는 상황이 된다. 살아있는 누군가가 얼른 죽기를 기다리는 시간, 김은 타인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죽음이 결코 나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 점점 느끼게 된다.

김은 짐칸으로 들어가 조화 곁에 누웠다. 등을 타고 찬기운이 올라왔다. 어두운 곳에서 차고 딱딱한 곳에 누워 있자니 염을 기다리는 시신이 된 기분이었다.

사진 주인은 유쾌하고 장난기 많은 눈매로 슬쩍 웃고 있었다. 죽지 않은 채로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 먼저 내려와 있는 것이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김은 텅 빈 영안실에서 그 사진을 보며 자신은 살아있다는 걸 실감했다.

김에게는 몇 년 간 미지근한 연애를 지속하고 있는 여자가 있다. 김은 여자와의 관계를 지속해야 할지 확신이 없다. 여자에게 자주 위안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론 여자가 자기를 너무 친밀하게 여길까 봐 두려움을 가진다. 여자와의 긴 미래를 상상하면 늘 불안감이 엄습한다. 여자는 언젠가 자신에게 실망할 것이기에 차라리 빨리 관계가 끝나기를 바라고 있다.

여자에게서는 화원에서와 같은 뒤엉킨 꽃 냄새가 풍겼다. 김이 좋아하는 냄새는, 딱히 냄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무취였다. 김은 화원을 인수하고 나서야 아무리 좋은 향기라도 몇 가지 종류가 한데 뒤섞이면 금세 악취가 된다는 걸 실감했다.

그는 모든 것이 안정되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원하는 듯 하다. 어두운 국도에 홀로 서서 여자에게 전화로 충동적인 이별을 고하고 난 김 앞으로 갑자기 한 마라토너가 지나간다.

그가 곁을 지나갈 때 후후 하하 하고 코와 입을 통해 일정한 간격으로 들이마시고 내쉬는 안정적인 숨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김은 마라토너가 어둠에 모습을 감춘 국도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걸 지켜보았다. 그는 흔들리는 흰 점이 되어 차츰 작아져가다가 끝내 숨듯이 모습을 감췄다. 그 완전한 소멸은 오히려 어둠 너머 보이지 않는 곳에도 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일깨웠다.

어두운 국도를 홀로 달리는 마라토너의 모습은 삶의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삶과 죽음은 사실 자연스럽게 이어져있다는 것. 김은 마라토너가 지나간 길을 따라 걷던 중 한 트럭이 그 앞을 지나가다가 순간 가드레일을 들이받으면서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바라본다. 눈앞에서 벌어진 극적인 순간에 김은 구급차 대신 여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난데없이 사랑고백을 한다. 자신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언어로, 진부한 것 같지만 그래서 더 진심처럼 느껴지는 언어로 여자에게 구애했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하는 것은 순전히 김이 검은 밤의 국도 변에 홀로 서 있으며 근처에 빛을 내는 것이라고는 장례식장의 간판과 불타는 트럭뿐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

만약 그가 사는 도시였다면, 그런 불안과 두려움이 없었다면, 그는 여자에게 여전히 무뚝뚝하게 굴었을 것이고, 간혹 친절하게 굴고 나서는 여자가 오해할까봐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내 감정이 모호할 때, 내 생각을 나 스스로도 모르겠을 때는 ‘만약 내가 오늘 밤에 죽는다면..’ 이라는 가정을 떠올려보면 좀 더 쉬워진다. 삶에 아무리 수많은 선택권이 있어도 죽음이라는 피니쉬 라인이 눈앞에 있는 상황이라면 가장 중요한 것이 명확하게 떠오르는 법이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우리네 삶은 매일 흔들린다. 얼마나 먼 미래까지 내다보면서 살아야 할지 모르기에 삶은 지겨우면서 동시에 불안한 것이다. 그러다 내 안온한 일상에 죽음이라는 검은 잉크가 한방울 뿌려지면 달라보이는 것들이 생긴다.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죽음이라는 두려움이 때로는 삶에 아름다운 붉은 노을을 드리우기도 한다는 것을.

어떤 한 존재가 있다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옆에서 숨쉬고 웃던 존재가 사라진 세계. 한 세계가 사라져도 여전히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대해. 그리고 언젠가는 남아있던 이도 모두 사라진다는 사실에 대해.

<저녁의 구애>는 제 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작가노트에서 편혜영 작가는 프리스 쉬베리의 <저녁의 구애> 라는 그림 작품을 우연히 보고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저녁에 마주보고 선 두 남녀와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들, 남자는 아마도 여자에게 구애의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좋아하면서도 주저하는 마음을 담아 쭈뼛쭈뼛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작가는 남자의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모습에 애틋함을 느낀다고 썼다.

프리스 쉬베리, 저녁의 구애

어떤 소설은 그림이 쓰기도 한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깊다. 나도 흥미로운 그림을 보면 그 장면에서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또 죽음과 사랑, 삶의 머뭇거림에 대해서도 언젠가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