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글이라는게 이렇게 흥미롭고 재밌을 수 있다는걸 이슬아의 인터뷰집을 보면서 깨달았다. <깨끗한 존경>, <새마음으로> 라는 인터뷰집도 재밌게 읽은 뒤 마지막으로 읽은 인터뷰집이다. 이슬아가 음악, 글쓰기, 영화 등 각 분야의 동료 창작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집이다. 글로 쓰여있는데도 오디오가 지원되는것처럼 대화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가벼움과 진중함을 오가며 인터뷰이들과 리듬감 있는 티키타카를 보여줘서 재밌게 읽었다. 사실 인터뷰집이란 건 인터뷰이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재밌게 읽기 힘든 장르일수도 있는데, 신기하게도 이슬아의 인터뷰집은 그 글을 계기로 인터뷰이들에게 더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효과가 생긴다. 김규진 작가의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라는 에세이와,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제목은 알았지만 딱히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작품이었는데 이 책을 계기로 바로 읽어봐야겠다며 다음 찜목록에 올려두었다.
특히 김규진 작가의 레즈비언 결혼기가 특히 인상깊었는데, 다소 음지의 영역에 머물러있던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밝고 뽀송한 양지로 끌어올려 재밌고 웃긴 에세이를 쓰고, 공장식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이야기. 결혼을 하기 위해 아내에게 PPT 기획서를 만들어서 발표했던 이야기. 웬만한 이성애자들의 연애보다 훨씬 흥미진진하고 심지어 부럽기까지 했다.
‘창작이란 뭘까’ 종종 생각한다.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내는 직업, 이것은 재밌으면서 동시에 두려운 일이다. 내 안에서 계속 새로운 것을 길어올려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는게, 또 그걸로 평가받고 돈을 버는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쉬운 일이 아니다. 그때 당시의 가장 훌륭한 나를 만들어보여준 후, 그 뒤로는 미련없이 그 다음의 새로움을 위해 떠나야 하니까.
자기 자신으로부터 한두 발짝 벗어날 수 있는 사람만이 스스로에 대한 농담을 지어낸다. 세상 속에 있다가도 잠깐 세상 바깥의 눈을 가질 수 있는 사람만이 세상에 대한 농담을 지어낸다. 농담이란 결국 거리를 두는 능력이다. 절망의 품에 안기는 대신 근처를 거닐며 그것의 옆모습과 뒷꽁무니를 보는 능력이다.
이슬아 <창작과 농담> p. 314
절망 곁에서 훌륭한 유머 감각을 발휘하는 순간 내 얘기는 남 얘기가 된다. 나를 남처럼 바라볼 때 얻는 어마어마한 자유를 당신도 알 것이다. 그 자유는 영화가 해내는 일이기도 하다.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특히나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농담이란 결국 거리를 두는 능력이라는 것. 내 안의 어둡고 축축한 곳에 숨어있는 아픈 부분을 꺼내 깨끗하게 세탁하고 다림질해 사람들에게 웃으며 보여줄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사람들을 징하게 웃기고는 어느새 눈물짓게 하는 고차원의 농담이 아닐까. 그래서 창작과 농담은 아주 깊은 관계가 있다.
나도 나의 아픔과 절망을 농담처럼 가볍게 꺼내서 사람들을 웃기고 울릴 수 있는 글을 쓰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밖에서 관찰하고 요리조리 뜯어보고 그곳에서 어떤 뾰족한 보편성을 발견하는 것,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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